노조와 거리두기…대한항공 촛불, 지속가능할까

[더(the) 친절한 기자들]

대한항공 직원연대, 노조 배제한 채 조양호 일가에 저항
최순실 사태때 정치색 뺀 이화여대 투쟁 성공 사례 있지만
내부서도 조직없이 ‘개혁 동력’ 잃지 않을까 우려 시선
대한항공 직원들과 시민들이 4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한진그룹 총수인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을 규탄하고 조 회장 일가에게 경영 일선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대한항공 직원들과 시민들이 4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한진그룹 총수인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을 규탄하고 조 회장 일가에게 경영 일선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지난 4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선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의 상습적 갑질에 참다못한 ‘을’들의 반격이 벌어졌습니다. 검은색 조종사 유니폼과 파란색 정비복을 입은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과 시민 500여명은 촛불을 들고 조 회장 일가의 갑질 횡포를 규탄하며 경영진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관련 기사 :“갑질 더는 못참아”…촛불 든 대한항공 ‘을’들의 반격)그런데 이날 집회를 전후로 직장인 익명 게시판 앱(App)인 ‘블라인드’ 등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한항공 촛불집회와 관련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개입설’을 제기하는 글이 다수 올라온 겁니다. 이 글들에는 “4일 촛불집회에 (대한항공 직원이 아닌) 동원된 인원이 가면을 쓰고 대한항공 직원인 것처럼 서 있을 것”, “민주노총이 직원들을 서로 믿지 못하게 만들고 편 가르기를 해 대한항공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민주노총이 종로경찰서에 촛불집회 신고를 했다” 등과 같은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주장들은 사실일까요? 이날 촛불집회의 주최자이자 330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대한항공 직원연대 단톡방’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는 ‘관리자’(이하 ‘리자’로 부르겠습니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이 관리자를 ‘리자’라는 애칭으로 부릅니다)는 지난 7일 진행된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노총과 정당 등의 개입은 철저하게 반대한다며 “현재 대한항공 노조의 상급단체 중 하나가 민주노총이다. 그들이 개입하면 역효과만 난다. 순수성을 의심받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 제기한 이른바 ‘민주노총 개입설’은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관련 기사 :[한겨레21] ‘대한항공 갑질불법비리 제보방’ 관리자 단독 인터뷰)

 

대한항공 촛불집회 현장에 있었던 기자가 보기에도 이날 집회는 민주노총이 기획했다고 보기엔 어설픈 점이 많았습니다. 사전에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행사라면 지도부의 일사불란한 지시 하에 참가자들의 손발이 착착 맞아야겠지만 현장 상황은 그 반대였습니다. 앰프의 성능이 좋지 못했는지 사회를 맡았던 박창진 사무장의 말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민주노총 집회에 사용되는 앰프는 성능이 엄청 좋은지 소리가 매우 잘 들립니다.) 직원들은 가요 ‘아아 대한민국’을 ‘아아 대한항공’으로 개사해 부르기로 약속했지만, 가사를 모르는 이들이 많아 합창으로 불러야 할 노래는 여기저기서 ‘돌림노래’가 되고 말았습니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 가면을 쓰고 있던 한 직원은 “(직원연대) 단톡방에 가사 좀 올려주세요!”라고 요청을 해 다른 참가자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리자’의 이 말은 대한항공 일반 직원들이 가진 지배적인 정서를 대변합니다. 이들은 대체로 조 회장 일가와의 싸움에서 회사 밖 노조나 정당의 지원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한항공 직원은 “외부세력이 들어오면 순수한 직원들을 선동하고 조종해서 자신들의 이익만 얻고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쳤습니다. ‘외부세력 개입 없는 순수 내부 구성원만의 연대’를 꿈꾸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의로운 이들을 파렴치범으로 내몬 역사

 

상당수의 대한항공 직원들이 ‘외부세력’을 배제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민주노총 등 노조에 대한 불신이 깊은 걸까요. 우선 내부적 이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의 설명이 눈길을 끕니다.

 

“20년 전 대한항공 노조 민주화 활동을 했던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 조합원들이 모두 한꺼번에 같이 상담을 하러 다닐 수가 없어서 자신들 중에서 대표 몇 명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십시일반으로 교통비 정도를 걷었어요. 대한항공은 온갖 구실을 대면서 이를 공금 횡령 혐의로 몰아갔고 징계를 내렸습니다. 그 뒤 회사는 사내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던 정의로운 이들을 공금 횡령을 저지른 파렴치범으로 매도했고, 대부분의 직원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 대한항공의 분위기에요. 그 뒤 대한항공 노조를 어떻게든 민주화시켜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예전의 그 활동가들과 상의해보는 건 어떠냐고 얘기를 하면 ‘그 사람들은 도덕성에 문제가 있어서 안 된다’며 고개를 흔들더군요.”

대한항공 내 최대 노동조합인 한국노총 산하 ‘대한항공 노동조합’. 누리집 갈무리.
대한항공 내 최대 노동조합인 한국노총 산하 ‘대한항공 노동조합’. 누리집 갈무리.
현재 대한항공에 존재하는 노동조합은 ‘대한항공 노동조합’, ‘조종사 노동조합’, ‘조종사 새 노동조합’ 등 3개입니다.
우선 ‘대한항공 노동조합’은 대한항공 직원 2만여명 가운데 약 1만1000여명이 가입한 한국노총 산하 노동조합입니다. 이 노조는 위원장을 간선제로 뽑습니다. 노조가 회사에 임금협상을 위임하는 등의 행태를 보이면서 노동자 권리보호를 위한 목소리를 제때 내지 못했고, 일부에서 ‘어용’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민주노총 소속으로 조합원이 약 1100명인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과 군 출신 조종사들을 중심으로 약 600명이 뭉친 독립 노조 ‘대한항공 조종사 새 노동조합’도 2014년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때 나름 회사에 대항했지만, 직원들의 신뢰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동안 조 회장 일가 견제에 다소 소극적이었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들 3개 노조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지난달 27일 ‘총수 갑질 재발방지 서면 약속’을 요구하는 내용의 집회를 계획했다가 대한항공 직원연대 단톡방에서 직원들의 ‘참여 거부’라는 역풍을 맞기도 했습니다. 상당수 직원들이 총수 일가 퇴진 이슈를 우선 과제로 꼽은 상황에서 ‘임금협상’ 문제 등이 안건으로 올라왔고, 의견 충돌이 일면서 ‘조종사 새 노동조합’은 아예 집회 불참까지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나머지 2개 노조인 ‘대한항공 노동조합’과 ‘조종사 노동조합’은 회사 쪽과의 서면 약속 요구사항을 ‘조 회장 일가 퇴진’으로 수정했습니다.
결국 대한항공 직원연대의 2차 촛불집회는 오는 12일 저녁 7시 30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지만, 직원연대와 별도로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과 조종사 새 노동조합은 오는 10일 정오와 오후 8시로 나눠 대한항공 본사 건너편 인도에서 각각 집회를 엽니다.“결국 그동안 경영진의 갑질 문제가 만연해 있음에도 노조의 힘이 약했고 제 역할을 못 했던 측면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그동안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을 보호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우산이 되어 주지 못한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대한항공 직원연대는) 노동조합과 같이하면 자신들의 목소리가 왜곡된다고 판단해 배제한 것입니다. 이번 일이 총수 일가의 갑질 문제가 불거진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노조가 본격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를 한 사례입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의 설명입니다.
■2016년 이화여대에서 확인된 ‘정치성 탈색’ 현상
그런데 대한항공과 같은 사례는 최근 대중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비리, 갑질 고발 운동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 모델의 ‘원조’는 이화여대 학생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대생들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출발점이 됐던 미래라이프대학(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 반대 시위 당시 이른바 운동권 세력의 참여를 철저하게 배제했습니다. 당시 열렸던 기자회견에서 한 학생이 마이크를 들자, 이를 지켜보던 학생들이 마이크를 든 학생이 ‘운동권’ 출신이라는 이유로 발언을 막기도 했습니다. “운동권 학생 발언 반대한다”거나 “배제해”라는 성토가 쏟아졌고, 마이크를 든 학생은 결국 발언을 포기했습니다. 학생들은 서로를 ‘벗’이라고 부르면서도 ‘순수한 이화인’의 의도가 변질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운동권’으로 지명된 학생들을 투표에 부쳐 농성장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당시 이화여대 곳곳에는 “미래라이프 반대 시위는 어떠한 정치색을 띤 ‘외부세력’과도 무관합니다”라는 문구가 붙었습니다.
2016년 9월2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본관 앞에서 학생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본관 점거농성 중인 학생들은 총장 사퇴와 이화학당 이사회의 사태 해결, 경찰의 소환조사 중단 등을 요구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6년 9월2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본관 앞에서 학생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본관 점거농성 중인 학생들은 총장 사퇴와 이화학당 이사회의 사태 해결, 경찰의 소환조사 중단 등을 요구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농성 과정에서 이화여대 학생들은 타 대학들의 연대집회도 거절했습니다. 정치권이 내민 손도 잡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화인의 목소리’라는 문구를 앞세웠고, ‘순수성’을 강조했습니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결국 학교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 승리는 나비 효과를 일으켜 한국 사회 정치 권력을 전복하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한편에선 정치성을 탈색한 ‘순수성’에 대한 강박이 씁쓸하다는 견해도 제기됐습니다. (▶관련 기사 :이화의 ‘느린 민주주의’엔 무엇이 빠졌을까요)
사회비평가 박권일 씨는 대한항공 직원들이 ‘이화여대 모델’을 따라가는 분위기에 대해 “이화여대 시위가 성공했고, 많은 매체가 이를 보도하면서 이 전략이 맞는 전략이고 싸움에서 이기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운동권 배제’가 당연한 전략으로 확인되면서 경로 의존성이 발생한 것 같다”며 “대한항공 직원들도 자신의 일자리를 걸고 싸우다 보니 이겨야 하고, 가장 성공 확률이 높은 전략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과거 운동권들은 수직적인 위계와 인간적 유대가 강하고 결사적으로 투쟁하면서 강한 결속을 발생시킨 것에 견줘 지도부 없는 투쟁과 운동권에 대한 철저한 배제를 바탕으로 한 지금의 투쟁 방식은 순간적으로 뭉쳤다가 사라지는 소셜 미디어적인 결속에 기반한 것이어서 순간적으로 불이 붙지만 쉽게 조직을 유지하지 못하고 흩어지는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노동조합은 필요하지만 민주노총은 꺼려진다?
‘민주노총과 거리두기’ 등과 같은 정치성 탈색 현상은 이화여대와 대한항공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상당수의 직장인들은 ‘블라인드’에 올라온 ‘민주노총 개입설’에 관심을 보이며 대한항공 직원들의 선택에 공감하는 분위기입니다. 이들은 주로 ‘민주노총은 과격하다’, ‘민주노총은 회사와 대화는 안 하고 정치적으로 싸우려고만 든다’는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회사원 임아무개(30) 씨는 “블라인드에 올라온 (대한항공 촛불집회 관련) 글을 보고 진짜 민주노총이 개입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라는 이익집단에서 누구나 자기 이익을 따지는 건 맞지만, 노조는 권력집단화됐고 노조위원장은 그 안에서 자신의 권력을 추구한 지 오래”라며 “민주노총 등이 순수하게 노동자의 노동권 향상만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라고 노조에 대한 평소 생각을 털어놨습니다.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여러 집회 현장을 취재해본 기자 처지에서도 대한항공 직원들이 왜 ‘외부세력’을 불편해하는지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빨간색 조끼와 머리띠, 듣다 보면 온몸이 쪼그라들 것만 같이 비장미 넘치는 투쟁가와 구호도 여전히 낯설고 어색합니다. ‘촌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죠.
박권일 씨는 “지금까지 관성적으로 지도부를 만들고 투쟁해왔던 스타일들이 젊은 세대들 눈에는 미학적으로 촌스러운 게 있고, 정치적으로도 이념적으로도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강요한다거나 합의 없이 지도부 독단으로 움직인 사례들이 많았다”고 지적합니다.
20~30대 젊은 노동자들의 ‘민주노총 포비아’에 대해 정의당 노동상담센터 ‘비상구’의 최강연 노무사의 설명도 흥미롭습니다. ‘비상구’는 이랜드 외식사업부 임금 체불, 파리바게뜨 제빵사 불법파견, 넷마블 임금 체불, 쿠팡맨 임금 체불 등 그동안 여러 기업이 노동자에게 저지른 착취와 갑질을 공론화하고 해결한 조직입니다.
“최근 자기 회사에서 일어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노조 설립 문의가 늘고 있지만 어쩌다 ‘민주노총’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사람들은 머뭇거리거나 ‘다시 고민해보겠다’며 겁을 냅니다. 오죽하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인데 (민주노총을 빼고) ‘공공운수노조에 들어간다’고 설명하면 민주노총이 아닌 줄 알고 ‘그건 괜찮겠네’라고 말하는 분도 계세요. 재미있는 건 이들도 자신의 삶에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노조는 필요하지만, 그 답이 민주노총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다는 겁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요? 최근엔 20~30대 젊은 노동자들의 비율이 높은 기업에서 설립된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은 우리가 아는 기존 민주노총의 운동 방식과 다른 시도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지난달 출범한 네이버 노조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네이버 사원노조 ‘공동성명’(共動成明)의 노조 홍보물. 네이버 사원노조 제공
네이버 사원노조 ‘공동성명’(共動成明)의 노조 홍보물. 네이버 사원노조 제공
■네이버 노조의 노동조합 ‘리브랜딩’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 창립 19년 만에 탄생한 네이버 사원노조의 공식명칭은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이하 화섬노조) 네이버 지회’입니다. 네이버는 젊은 아이티(IT) 노동자들에겐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노동조합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노동조합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바꾸는 ‘리브랜딩’ 작업을 벌였습니다.
네이버 노조는 젊은 노동자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작지만 신선한 시도들을 했습니다. 기존에 노조를 상징하는 붉은색 대신 네이버를 상징하는 밝은 연두색으로 노조 누리집을 단장하고, ‘함께 행동하여 네이버를 깨끗하게 성장시킨다’는 뜻의 ‘공동성명’(共動成明)이란 노조의 별칭도 만들었습니다. 노조 홍보를 위해 배부되는 전단물과 스티커 등에는 ‘공동성명’을 위해 별도로 제작된 타이포그라피가 들어갑니다. 조합원들도 “깔끔하고 멋지다”, “예뻐서 책상에 붙여놨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네이버 노조의 박상희 수석부지회장은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투쟁적인 이미지를 많이 떠올리는데, ‘공동성명’은 노조가 조합원들이 직장생활에서 겪는 고민을 듣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동반자임을 알려주고 싶었다”며 “네이버와 계열사뿐만 아니라 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근무하는 아이티 산업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노조 모델을 제시하고자 노력 중”이라고 설명합니다.
■대한항공 내부에서 제기된 ‘순수성 증명’에 대한 의문
하지만 민주노총이라는 상급단체가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들에게 울타리가 되어준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해 불법파견 논란을 계기로 설립된 파리바게뜨의 첫 번째 노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들은 민주노총 소속으로 들어갔는데요. 임종린 민주노총 화섬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장의 말은 이렇습니다.
“(저처럼) 평범한 사람이 처음 노조를 만들려고 했을 때 회사에 공문을 보내는 것도, 노동 관련법도 잘 몰랐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미 기반이 잡힌 민주노총 산별노조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노조 활동을 해보니 회사마다, 사업장마다 분위기가 달라서 사람들이 보통 민주노총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과격하거나 전투적인 분위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4일 첫 번째 촛불집회를 마친 뒤 대한항공 직원들의 여론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습니다. 현직 대한항공 직원 ㄱ씨는 “직원들이 온라인(단톡방)을 통해 소통하고 오프라인으로 나왔다. 순수하고 자발적인 운동이라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지속성 부분에서 의문이 든다”며 ‘순수성 증명’이라는 그동안의 활동 방향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또 다른 직원 ㄴ씨도 “총수 일가를 퇴진시키고 다시 경영하지 못하게 하려면 외부 장치를 통해서 규제하는 게 필요하다. 차선책은 내부 견제세력을 키워야 하는데, 합법적인 건 노조뿐이다. 기존 어용노조를 민주화하거나 또는 새로운 민주노조를 만들어서 힘을 키우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한숨을 지었습니다. 다시 말해, 노조와 같은 ‘지속가능한 견제 시스템’ 없이 일회성의 촛불집회를 몇 차례 전개하다 조현민 전 전무의 ‘물컵 갑질’로 촉발된 소중한 개혁 기회가 유야무야 끝나버리진 않을까라는 직원들의 걱정이 시작된 겁니다.
이 때문에 ‘리자’도 심경의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목적(조양호 총수 일가 퇴진)에 집중해도 모자란 시간에, 외부단체는 너무 성급하고 이용만 당하다 끝나게 된다”는 이유로 외부세력 개입에 반대했던 ‘리자’는 9일 ‘조양호 회장 일가 퇴진 촉구 촛불집회’ 카카오톡 익명 채팅방에서 ‘태세전환’을 선언했습니다.
대한항공 직원연대 카카오톡 익명 채팅방 화면 갈무리.
대한항공 직원연대 카카오톡 익명 채팅방 화면 갈무리.
‘리자’는 “우리 힘만으로는 3차 집회까지는 끌고 가겠지만 그 후로 주목을 끌기 힘들고 동력이 많이 상실될 것”이라며 “곧 직원연대 조직을 구성할 예정이다. 2차 집회 이후 조직 구성에 대한 구체적 방법과 인원 구성을 공개토록하여 모집하겠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노조의 개입을 차단해 “순수성을 증명하겠다”는 대한항공 직원들의 촛불집회는 지속 가능할까요? 또 조양호 회장 일가의 경영 퇴진을 이뤄낼 수 있을까요? ‘더(the) 친절한 기자들’의 답변은 “네, 니오”(긍정도 부정도 아닌, ‘네’이지만 동시에 ‘아니오’라는 뜻)입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운동의 순수성에 방점을 찍은 ‘이화여대와 대한항공 모델’에 대한 박권일 씨의 한마디를 되새겨볼 만합니다.
“‘지도부 없는 혁명’이 듣기는 좋지만, 긴 싸움을 해야 할 때는 단단한 결속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화여대 시위 방식은 불리합니다. 운동권이나 시민사회 단체와 분리되면, 좀 더 큰 싸움을 해야 할 때 고립되거나 각자도생하면서 투쟁하다 싸움이 흐지부지되는 안 좋은 결과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한항공 투쟁도) 우려스럽습니다.”